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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nch/만년필 연구소

펠리칸 만년필(PELIKAN SOUVERAN : M600)에 대한 짧은 기록


처음으로 구체적인 목적성을 가지고 선택한 만년필

만년필을 주로 사용하는 곳은 긴 손계산, 편지나 엽서 쓰기 일지 쓰기 정도.

여기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 손계산인데 한창 많이 쓸 때는 A3 수십장을 양면으로 빼곡히 쓴 적도 있다. 



오전에 책상 앞에 앉아서 잉크를 가득 채우고는 저녁 식사 후의 이른 밤에 잉크를 다 소모한 적도 있으니 내 만년필들은 꽤 중노동에 시달려 왔다. 그런 필기량을 한 두달 정도 하게 되면 어깨가 뻐근하게 결리는 나날이 오래 가곤하는데 그 때는 단순히 컴퓨터를 많이 만지고 필기량이 많아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 여러 경험이 쌓이고 만년필도 조금씩 알아가다 보니 그 때 팔과 어깨에 피곤함이 쌓였던 것이 물론 많은 양의 노동도 그 이유겠지만 적절하지 못한 만년필의 선택이 원인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최근의 만년필 글에서 쓰고 있는 바와 같이 만년필 몸통의 굵기, 잡는 위치 적절한 펜촉의 선택 등이 필기감을 크게 좌우한다고 생각한다.



장시간 대체로 쉼없이 빠른 필기를 하는 나에게는 우선 세필 보다는 잉크량이 어느 정도 확보가 되는 F촉 이상이 무난하다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아무래도 연성이 좋겠다. 


편지나 엽서와 같이 가끔 짧게 쓰는 글에는 경성촉이 주는 사각거림과 거친 맛도 꽤 매력적이지만 장 시간의 필기에서는 그런 거침은 바로 피로도로 환산된다.



그래서 고시펜으로 유명하다는 펠리칸이 눈에 들어왔는데 처음부터 오랫동안 길 들인듯한 부드러움이 일품이라고 했다. 고시생들의 필기량도 만만치 않을 터. 그네 들이 오랫동안 선호해온 브랜드라면 장시간의 필기에 대해서 검증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물론 만년필 모임 같은 데서 여러 펜을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나 여건상 그럴 수는 없었고 그 동안의 만년필 경험이나 여러 글들을 통해 가상 채점을 하는 수 밖에 없었다. 



펠리칸과 F촉 이 정도 정했다면 그 다음은 무엇일까.

아다시피 펠리칸도 m200에서 m1000까지 여러 종류의 모델이 있다. 여러 사람들은 가격으로 나누던데 가격을 강조하기 보다 크기를 더 우선시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수십만원하는 고가의 만년필.

가격때문에 (잠재적으로) 손에 잘 안맞는 불편한 것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약간 더 지불하고 손에 잘 맞고 편한 것을 선택할 것인가는 그리 길게 생각할 일은 아닌 것 같다고 본다.


그래서 그 다음 단계는 ?



그렇다.

브랜드와 촉을 정했다면 그 다음은 만년필 몸체의 크기이다.


자신의 필기 스타일에 맞는 세심한 크기선택도 중요

다음 주제인 크기는 가게에 가서 직점 여러 모델의 크기를 직접 쥐어 보고 결정했다.



만년필 가게(오사카의 모리타)에 가서 펠리칸에 관심을 보이니 주인이 여러 모델을 꺼내서 손에 쥐어 볼 기회를 주었다. 크기를 결정하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m400은 작아서 손에 걸치기가 불안불안했고 m800이나 m1000은 무거웠다. 



참고로 나는 두껑을 끼우지 않고 사용하는 것을 선호하는데 여러 모델을 쥐어 본 결과 m600이 손에 착 감겼다.




다음은 만년필의 색깔인데 아다시피 일반 모델로 빨강, 파랑, 녹색, 검정이 있다. 주인이 가장 펠리칸스러운 모델로 녹색을 여러번 강조했는데 나는 그냥 단순히 자주 사용하는 잉크가 파랑이므로 파랑색 모델을 선택했다.


녹색 만년필에서 파랑 잉크가 나오면 이상하니까 !!!



운이 나쁘지 않았다. 잉크를 채우고 몇 번의 시필로 제대로 만났구나..하고 바로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재밌는 건 이전엔 몽블랑 연성이 꽤 부드럽다고 느꼈는데 이 녀석을 경험한 뒤로는 몽블랑닙이 약간 경성으로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좋은 의미에서 연애도 많이해봐야 시야가 넓어져 자신에 맞는 적절한 상대를 찾을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누가?) 다른 상대와 사귀어 보면 이 전의 상대가 또 다르게 보일 수 있고 동시에 이전의 상대를 기준으로 지금의 상대를 좀 더 깊이 헤아릴 수 있는 법이니까.



다른 여러 펜들은 다른 기록을 남기거나 편지를 쓸 때 간혹 사용하지만 이 녀석은 정말 야전에서 사용하는 실전용 펜이다. 많이 사용할 때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잉크를 다시 채울 때도 있었다. 



원래 파랑을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여전히 질리지 않은 색감이다.



이 m600은 내가 처음 사용해 본 몸통회전식(피스톤 필러?) 만년필이다. 펜촉을 잉크에 담가서 잉크를 빨아들이는 것을 싫어해서 컨버터를 직접 담그거나 스포이드로 컨버터에 직접 잉크를 주입하곤 했는데 이 녀석은 어쩔 수 없이 잉크병에 담글 수 밖에.





그래도 나름 촉을 담궈서 잉크를 빨아들이고, 다 빨아들인 후 잉크 몇 방울을 흘려 주고,

그리고 펜촉에 묻은 잉크를 닦아 주고하는 이런 작은 노동도 즐겁기만 하다.


결국 잘맞는 짝에게 다시 돌아오는 법

이렇게 금술이 좋던 m600과도 잠시 소원했던 시기가 있었다. 플래티넘 B닙을 사용했을 때였는데 와인색 몸체에서 나오는 와인색 잉크에 취해서 한동안 그 녀석을 사용한 적이 있었다.



 또한 세세한 기록을 위해 EF세필을 주로 사용했던 적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F촉보다는 EF촉으로 노트를 정리하는 것이 한 페이지에 좀 더 많은 양의 내용을 정리하기에 좋았다.



하지만 결국 다른 만년필 사용에서 오는 피로감과 종이 위에서의 경쾌함이 다시 m600을 자연스레 찾게 했다. 다른 만년필은 적절한 용도에 사용하는 분업 중이고 이러한 몇 만년필과 더불어 m600은 주전으로 여전히 열심히 일해 주고 있다.



펠리칸의 상징은 말 그대로 펠리칸이다. 잘 보면 엄마(혹은 아빠) 펠리칸과 새끼 펠리칸이 함께 있는 모습이다. 이는 이 만년필을 만든 가문의 상징이라고 알고 있으며 모정과 가정의 화목을 뜻한다고 알고 있다.




그 부분에 대한 사진이 없긴 한데 두껑에 달린 호주머니에 끼우는 저 부분은 펠리칸 부리 모양이다.



굳이 각인을 한 것은 오래 내 곁에 있을 녀석임을 직감한 것도 있었지만 이 동네의 각인 기술도 알고 싶어서였다. 가게까지 거의 한시간 정도 걸림에도 불구하고 각인을 맡기고 일주일 후에 다시 그 가게를 찾아 만년필을 찾아왔다.


나에게 만년필은 악세사리라기 보다 생필품이자 실전병기

그냥 막쓰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거칠게 부주의하게 다룬다는 뜻이 아니라 가까이 두고 작은 낙서, 메모 등에 자주 사용하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그래도 생채기 내기는 싫어서 보통은 이런 파우치에 자주 쓰는 만년필 두개를 넣고 어딜 가나 가지고 다닌다.



주요 필기는 물론 위와 같이 영수증 낙서도 해가면서.


마무리

사진을 일단 올려놓고 틈틈히 시간내어 내용을 채워봤다. 물론 사진에 대한 제대로된 설명이 아니고 사진과 글이 따로 노는 글이라 기존의 리뷰와는 다르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만년필에 대한 리뷰가 아니라 기록정도의 제목을 달아본 것이다.


최근에 m600을 구매목록에 두고 고민하는 이가 있고 의뢰(?)도 있었고 이쯤에서 사진 등과 함께 정리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여 글을 써 보았다.


만년필은 공장이나 장인들에 의해 같은 규격으로 만들어져 나오지만 모든 사람이 다르듯이 주인에게 간 만년필은 모두 저마다의 다른 생활과 사연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나의 만년필의 사연을 써 보았다.


2012년 11월 11일 일요일